"무죄다"라는 말 한마디 - 황인철(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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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홈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667회 작성일 2004-04-28 15:47본문
KBS 1TV 2004.4.30 금요일 밤 10시 인물현대사 불의와 부정, 억압에 온 몸으로 맞선 인권변호사 1993년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까지 황인철변호사는 그다지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그가 죽은 후 언론들은 잠시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곧 그를 잊었다.스타급 인권변호사들이 정치권과 시민사회 여기저기에서 촉망받던 무렵이었다.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초등학교의 교사였고 그는 9남매중 장남이었다.조용한 모범생이었으며 바른생활 청년이었다. 온식구의 기대에 부응하여 1961년 고시에 합격했지만 집안형편 때문에 천직으로 생각한 판사직을 버리고 1970년 변호사가 되었다 "피고인의 무죄를 확신한다. 그러나 유죄 판결이 떨어질 것을 의심치 않는다" 74년 이른바 민청학련사건에서 79년 김재규사건, 89년 임수경방북사건에 이르기까지 어두운 폭압의 시대.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많은 시국사건들의 변론을 주도하고 이끌었지만 어떤 영광도 없었다. 당시 '무죄다' 라는 그의 말 한마디는 곧 유죄가 되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모두들 숨을 쉬었고 용기를 얻었다. 암흑의 시대를 밝힌 '인권 등불' YH, 동일방직, 원풍모방 등의 노동사건에서 목동, 사당동, 상계동 철거민사건에 이르도록 어디 하나 기댈 데 없던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위해 수많은 변론과 활동을 해왔지만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늘 쓰러진 자들의 곁에서 함께 했다. 친구와 후배, 지인들의 부탁을 들어주며 인권변론에 나섰고 상식과 양심의 편에서 불의와 억압에 맞섰다.70년대 이른바 인권변호사 4인방(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황인철)의 등장은 유신의 어둠아래 고요히 빛나는 횃불이었고, 그는 늘 보이지않는 중심이었다. 정의와 양심, 사람다운 삶은 무엇인가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를 이끌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창립하고,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초대공동대표로, 정의구현전국연합대표로,박종철추모사업회 회장으로, '문학과지성'의 초대편집인으로, 그는 참 많은 일을 감당했다.아니 시대는 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었다.가진자의 대명사인 변호사였지만 황인철은 아낌없이 주는 한그루 나무처럼 살았다.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받기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황인철 변호사의 그리 길지 않은 삶은 사랑과 정의를 증거하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분에게 있어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김수환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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